말하는 것을 듣거늘

사도행전 강해 (14장 8-10절)

다리가 불편하여 평생 앉아서 지내던 사람이 바울이 전하던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말씀을 전하던 바울은 그를 주목합니다. 바울은 그에게 선포합니다. “일어서라!” 그래서 그는 일어나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습니까? 말씀을 들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평생 앉아 지냈던 사람이 않해 본 것이, 혹은 못들어 본 것이 무엇이 있었을까요? 병원, , 덕담, 훈계, 심지어 저주스런 말들, 만약 돈이 있었다면, 술사들을 통한 각종 치료모든 것이 소용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바울의 설교가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바울은 병 낫는 법에 관한 강의 중에 있지 않았습니다. 인생을 초월하여 살 수 있는 철학을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말하였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 말씀에 귀를 기울였을 때에, 생각지도 못한 그의 문제가 해결된 것이지요.

 

우리가 말씀에 집중하고 살 때, 모든 문제를 책임지시는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가끔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해답을 말씀에서 찾으려고 하는 경우 말입니다. 물론 이것도 참으로 좋은, 말씀 중심의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아니, 가장 이상적인 말씀의 삶이지요. 하지만, 더욱 성경적인 말씀 중심의 삶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에, 각종 영양분이 몸에 흡수됩니다. 그 영양분이 필요한 몸의 각종 부위가 그것을 먹고 힘을 얻어 우리의 몸을 지탱해 주는 것이지요. 물론 칼슘이 많이 필요한 사람, 단백질, 비타민이 특별히 필요한 사람은 그것을 함유하고 있는 음식을 많이 먹겠지요. 하지만 모든 음식을 골고루, 기분 좋게 먹으면 우리 몸은 건강합니다. 그저 음식을 먹고 기쁘게 살면 그만입니다. 생각하기 위해, 판단을 잘 하기 위해, 실수를 줄이기 위해 음식을 먹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말씀은 우리에게 영적 에너지를 공급해 줍니다. 이것은 필요하고, 저것이 더욱 중요하고, 요것은 나중에등등의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저 먹습니다. 지금 나에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말씀 중심의 삶은 우리 개인 중심의 삶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 듣기 원하는 말씀은 그게 아니야”, 혹은 나에게 지금 필요한 말씀은, 내가 지금 당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에 대해 도움을 주는 말씀이어야 해여러분,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것이야말로, 지극히 인간 중심의 삶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우리의 생각을 초월합니다. 주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의 수준의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고상한 지식의 체계가 아닙니다. 만약 그 정도의 것이라면, 어떻게 비슷한 세상의 지혜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말씀은 우주를 창조하신 능력의 말씀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의지를 통치하고 있으니,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것이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먹습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를 발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