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야고보여!

사도행전 강해 (15장 12-21절)

1. 바울과 바나바는 여전히 하나님만을 증거하며 자신들의 사역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당연하고 쉬운 일인 것 같으나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 잘난 멋으로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습니다. 자신이 이룬 일들을 남들이 알아 주지 않으면, 우린 쉽게 지쳐 버립니다. 칭찬해 주고 상을 줄 때, 우리는 더욱 열심히 일하곤 하지요. 좋은 대학을 나와서 좋은 직장에 들어간들 남들이 인정해 주지 않으면 그게 무슨 좋은 대학이요 좋은 직장이겠습니까? ‘좋은이라는 뜻은 모두가 부러워하고 모두가 인정하기 때문에 붙는 수식어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바로 그 좋은 영광을 모두 하나님께 돌려 드린 것입니다. 아무리 큰 표적과 기사가 따르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사역은 힘들고 외로운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 매력적인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일이 너무 매력적인 일들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목회자, 선교사, 여러 가지 사역자들너무 많습니다. 그들이 영광을 받는 재미로 일하는 것은 혹시 아닐까요?

 

2. 본문에 나오는 예루살렘 총회에 종지부를 찍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야고보입니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입니다. 그가 누구였습니까? 자신의 형인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치 않았던 사람입니다. 그랬던 그가 지금 예루살렘 교회의 목회자가 되어 있습니다. 귀한 결론으로 교회의 대타혐과 일치를 이루어 내고 있습니다. 주님의 일하심이 이렇습니다. 베드로, 바울, 야고보, 이들은 모두 주님의 일군이 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배신하고 핍박하고 옹졸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들을 그대로 사용하시네요. 정말 기묘한 일 아닙니까? 우리는 말씀 안에서 중요한 교훈을 자주 놓치곤 합니다. 바로 이런 것들이지요. 이처럼 은혜와 큰 힘이 되는 것이 없습니다. 지금 현재, 이 순간에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물어보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말이지요. 베드로는 주님의 그 질문을 놓치지 않고 대답하였습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의 그 질문을 너무 쉽게 놓치는 것은 아니지요. 조금 전까지도 주님을 배반했던 우리들주님을 우리를 사용하시길 원하십니다. “내 양을 치라아멘!

 

3. 야고보의 지혜로운 논리는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정말 중요한 것(할례 받을 필요 없음)을 지키기 위해 덜 중요한 것들(우상음식, 근친상간, 피를 먹음)을 포기합니다. 교회의 화합을 위함입니다. 더욱이 가장 중요한 것(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설득력 있게 호소하기 위해 구약의 말씀(아모스 911-12)을 근거로 들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완벽한 설교요 절제력 있는 타협입니다.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교회에 얼마나 많은지요. 반면에 정말 중요한 것인데도 그냥 놔두는 경우는 정말 참기 힘이 듭니다. 지역 교회는 말씀 앞에서 무력한 것입니다. 말씀을 떠나 중요한 것을 포기하는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반면에, 괜찬은 것인데 남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교회도 참 많습니다. 누구의 잘못이 더 큰 지 모르겠습니다. 교회 안에는 다양한 문화권(세대, 교육, 가정 등등)에서 자란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모두 함께 반드시 따라가야 할 것과 조금은 양보하고 이해해도 될 만한 것들을 구분해서,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교육과 교제가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가능해지는 우리 생명샘 장로교회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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