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의 초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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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배의 초점 (2)                                      

 
 신학대학을 다닐 때의 이야기다.  학급 동료가 함께 점심을 먹으며 지도 교수님의 험담을 엄청나게도 퍼부었다. 당시 내가 듣기로 가장 심한 험담은 이런 것이었다.  역사신학을 공부하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의식이 없다는것이었다. 역사 신학자로서는  가장 수치스러운 말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나는 친구가 교수님을 존경하지 않는 알았다.  졸업을 즈음으로 기억난다. 교수님과 함께  몇몇 친구와 함께 식사를 기회가 있었다. 마침 그렇게도 신랄하게 교수님의 험담을 늘어놨던 바로 동료도  동석했다. 그런데 말인가?  온갖 아부의 어휘들을 총동원하여 교수님을 찬양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물론 이런 유의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같은 신학을 하는 동료에게서 이런 모습을 보게 되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한국에서 어떤 지교회를 섬길 때였다. 담임 목사님에게 너무나도 충성을 하고 있는 동료 부교역자가 있었다. 담임 목사님 또한 그분을 좋아하셨다.  남들이   편애를 하신다고 느낄 정도였다. 아니 분명히 편애를 하셨다.  빈틈없이 철저히 충성을 하는데 누가 사랑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다른 사람들이 부교역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다.  담임목사를  너무나도 규모있게 섬겨서  그것 또한 은사겠지 하였다. 하지만 그분은 남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너무도 게을렀다. 아니 오히려 섬김을 받으려고만 했다.

       필자는 지금 신학생과 목사를 헐뜯으려는 것이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런 면이 있다.어떻게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가르쳐 삶의 지혜인지도 모른다.  무엇인가 자기 보다 우월한 사람 앞에서는 최선을 다해 보이지만 , 남들에게는 사람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지극히 속물적인 근성,  자기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있는 높은 사람에겐 좋은 점수를 따려고 최선을 다하지만 ,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쉽게 말과 행동을 거침없이 하는 지극히 세속적인 인간 자체의 근성.

        이러한 근성들이 우리의 예배의 초점을 흐리고 있다. 참으로 있는 음악과 함께 예배를 드렸다 .  훌륭한 웅변술로 장식되어 있고 현실적인 감각이 뛰어난  설교를 들으며 예배를 드렸다. 한치의 오차도 없는 십일조와 감사헌금까지 드려가며 정성스레 예배를 드렸다. 예배를 마치고 있게 차려 입은 옷의 맵시를 느껴가며, 보이는 모든 사람과 반갑게 인사도 나눈다.  그리고는 손에 쥐어 있는 마지막  남겨진 커피의 향을 느끼며 몸을 차에 싣고 교회의 주차장으로부터 빠져 나온다.함께 빠져나오는 남들의 차종을 곁으로 봐가며…… 그리고는 주간 열심히 산다.  분을 잊은 ….

        우리는 분명히 명심해야 한다.  예배의 초점은 우리의 실생활에 있다는 것을 .

우리의 구체적 삶의 예배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의 공식적인 예배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자들은 반드시 남들에게 칭찬을 들어야 한다. 우리는 사도행전에 나와 있는 초대교회의 사적을 주시하며 반복 다짐할 필요가 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주위사람들에게 칭송을 들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들이 말을 잘해서?  돈을 벌어서?  좋은 집이 있어서? 어떤 현실적인 이유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서로 나누어 갖는 모습, 조금이라도 부한 자가  가난한 자를 도와 주는 모습, 서로 돌아가며  집에 모여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모습,  단순하면서도 진솔한 기쁨을 나누는 모습,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  이러한 것들로 인해 남들에게 칭찬을 받았던 것을 잊지 말자.

       예배의 올바른 초점은 우리의 생활에 있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예배드리는 자들답게,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 교회에서 드리는 소위 대예배만이 하나님께서 보시고 받으시는 것이 아니다. 하루 하루의 삶을 예수의 제자답게 애통해 하는 모습 속에서 하나님은 예배를 받으신다. 그러한 예배를 드리는 자들이 지친 영을 이끌고 교회에 예배를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는 위로의 말씀을 던지시며 참된 영의 안식을 주신다. “네가 수고를 하였구나! 거룩한 제사를 내가 받았으니 이제 너의 땀과 눈물을 내가 닦아 주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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