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5일 토요일 (시편 31-3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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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일생을 슬픔으로 보내며 나의 연수를 탄식으로 보냄이여 내 기력이 나의 죄악 때문에 약하여지며 나의 뼈가 쇠하도소이다 (31:10)

가장 인간적인 고백이 아닌가 싶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겸손이 모습이 되길 간절히 바래요. 영육간에 약해짐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실을 이런 고백을 할 때, 이것이 진실한 고백이라면, 바로 이런 때 주님의 강함이 역사하는 것 아닐까요?

2.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 (32:10)

‘인자’는 용서의 긍휼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들에게도 슬픔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슬픔이 없나요? 있습니다. 고통과 온갖 역경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용서하심과 긍휼하심이 충만하여서, 그 힘을 빌어 매번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주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없다면, 정말로 인생은 덧 없지 않습니까? 

3. 새 노래로 그를 노래하며 즐거운 소리로 아름답게 연주할지어다 (33:3) 

예배 음악의 가장 교과서적인 성경구절입니다. 새 노래란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늘 회개의 영으로 찬송하라는 의미이지요. 회개를 하고 부르는 노래는 그 어떤 노래도 새 노래가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글자 그대로 정말 새로운 노래를 의미합니다. 예배음악은 발전이 있어야 하고 늘 새롭게 작곡이 되어 교회에 뿌려져야 한다는 지극이 교회음악학적인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러한 노래를 마음으로는 즐겁게 그리고 음악적으로는 공교히(아름다운, 연습을 많이 한) 연주해야 합니다. 음악을 너무 쉽게 다루는 교회가 많습니다. 하지만 잘못된 것이지요. 음악은 음악이어야 하고, 그 음악을 하는 우리 모두는 더욱 거룩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4.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34:18)

죄악 때문에 항상 마음이 아프십니까? 아니면 죄악을 느끼지 못하며 사십니까? 죄악을 느끼면 주님 앞에서 얼마나 울어 보셨나요? 그 자신의 죄악 때문에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성도들을 좋아하시며 사귀십니다. 별로 마음에 쿵하고 다가오질 않으시나요? 굳이 그렇게 열심이 영적으로 살지 않아도 사는 세상이기에 그렇습니다. 굳이 그렇게 세상과 싸워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예,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 받은 주님의 백성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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