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4일 목요일

고린도후서 7장 10절

 

하나님의 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근심 거리가 없는 사람이 누가 있나. 세상살이 자체가 어쩌면 근심인데… 그 근심을 나름대로 최소화 하려고 사는 것이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인간다운 삶이 아닌가! 물론 근심 없는 삶은 없겠지만,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누리려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다 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세상 근심이 어찌 없을 수가 있는가. 의식주에 대한 근심과 염려가 믿는 성도들에게 없어야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낙원이다. 하지만 우리 성도들도 동일한 것으로 근심하고 염려하며 산다. 이것이 세상 근심이라면 우리 모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세상 근심이란, 염려 거리가 닥쳤을 때에 하나님 앞에서의 통찰이 전혀 없이 그 염려에 휘둘리는 것을 말한다.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생각과 행동 방향이 너무 쉽게 변하는 것을 말한다. 삶의 정황 자체를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그것이 중요한 변수를 차지해서는 안 된다. 세상 근심은 대중의 힘을 몰고 다니기에 우리를 엄습하기에 충분하다. 깨어 있어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조금 힘들더라도, 한두번 깊이 생각하자. 힘들다는 것은 벌써 남들에게 설득력 있는 세상 근심의 큰 파도이기에 심사숙고해야 한다. 한두번 생각했다고 생각할 때, 한두번 더 생각하자. 반드시 달라진다. 우리가 그렇게 시간을 벌며 지혜로운 망설임으로 세상 근심을 대할 때, 그것은 이미 세상 근심이 아니다. 성령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그렇다. 그 망설임이 기도와 절규일 수도 있고, 성령께서 직접 개입하시는 우리의 순간적 주저함일 수도 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뜻을 두려워 하기에 우리가 누리는 하나님의 또 다른 은혜이다. 자신을 시험에 보라. 이러한 영적 훈련의 종국의 땅에는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미세한 회개가 자리할 것이다. 

하나님을 더욱 기쁘게 해드리기를 원한다. 말씀을 대할 때마다 근심하자. 겸손의 은혜가 충만할수록 말씀을 대하게 되고 뿐만 아니라, 부족함으로 인해 깊은 근심에 빠지게 될 때가 많다. 하나님의 원하심에 가까이 가지 못하는 것 때문에 근심하는 것… 참으로 큰 은혜이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의 훈계로 인해 괴로워하고 힘들어 했다. 요사이 이런 교회가 어디에 있는가. 우리 생명샘 교회가 이런 교회 되면 참 좋겠다. 말씀 때문에 근심하는 교회, 이 근심은 세상 근심이 아니기에 기쁨이다. 참 기쁨이다. 기쁠 수 없는 사람이 기쁨을 이야기 하는 복음을 조금은 우리가 이해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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