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교회

사도행전 강해 (12장 18-2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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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 본문의 사도행전 말씀은 세상의 전형적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바로 죽이고 죽는 모습입니다. 귀한 사람의 목숨을 너무 쉽게 끊어 버립니다. 그것도 권세를 잡은 자의 말 한마디로 말이죠. 참으로 어처구니 없지 않습니까? 법이 사회를 위해 존재하고 나라를 위해 존재한다고는 하지만, 그 법은 권세를 잡은 자들의 손아래 있음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것이 세상입니다. 성공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 오히려 그것이 합리적으로 이해가 되어버리는 세상,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입니다. 자신의 왕권강화를 위해 수단으로 삼으려 했던 베드로의 죽음, 그것이 무산되었으니, 헤롯에게는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었겠습니까? 간수병들 몇 명 죽이는 것은 그에게 일도 아니었겠지요.

 

2. 그러한 헤롯이 자신의 아지트인 가이사랴로 돌아와 보니, 평소에 그렇게도 자신을 불편하게 했던 반갑지 않은 사람들(두로와 시돈)이 자신의 신하들과 함께 잔치를 벌여 놓았습니다. 정치적인 이유에서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는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시민들까지 동원해서 자신을 신격화하는 듯한 찬양의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이지요. 세상이 이렇습니다. 단지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우리에게도 사실 이런 연약함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남들이 자신을 칭찬해 줄 때, 기분 좋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요? 다 좋습니다. 하지만 이 칭찬 속에 조건이 숨어 있다면, 그것은 위험하고 불순한 계약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기독교 안에서의 관계 속에서 칭찬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 있다면,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칭찬받을 때의 흥분되는 감정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도 있어야 하겠지만, 반드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것이 마음에 더 많이, 오래 남아야 합니다. 그것은 그의 영성에 달려 있습니다.

 

3. 세상이 그렇다면 교회는 어떻습니까? 무엇이 흥왕하였다고 했습니까? 분명히 오늘 본문은 증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많아지고 늘어났다고 말입니다. 세상은 관계에서 살아남고, 성공하기 위해 피를 토하지만, 우리 교회는 말씀이 살아나고, 말씀이 부흥합니다. 누구를 통해서요? 우리를 통해서입니다. 바나바와 바울이 귀한 구제의 사역을 마치고 안디옥으로 돌아왔습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한 진정한 부흥의 역사가 교회 안에서 어떻게 더욱 진전되는지, 우리는 사도행전을 통해 계속해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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