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하듯이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도행전 강해 (17장 1-9절)

1. 빌립보에서의 힘든 말씀 사역의 일정을 마치고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이르게 됩니다. 데살로니가는 당시의 마케도니아 지역에서 가장 부요한 도시였습니다. 상업, 무역, 군사, 정치적으로 가장 복잡하고 가장 큰 도시였습니다. 따라서 많은 인종이 모여 살던 도시이기도 하고. 많은 유대인들이 상업적인 이유로 모여 살던 도시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사도 바울에게는 여러가지로 생각할 것이 많았을 것입니다. 분명히 회당도 많을 것이고, 소위 말하는 랍비(선생)의 그룹도 있을 법한 도시이지요. 과연 그곳에서 말씀을 전할 때에 어떠한 결과들이 나올까 하는 여러가지의 기도제목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2. 바울은 여전히 하던대로 회당에 들어가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바울의 설교를 몇 가지의 단어을 사용하여 상세히 알려 주고 있습니다. 첫째, 성경을 가지고 설교를 했습니다. 둘째, ‘뜻을 풀어라는 단어는 마음을 열다라는 의미입니다. , 설교를 듣는 이들의 마음을 열기 위해 노력한다는 뜻입니다. 셋째, ‘증언하고라는 단어는 집어 넣다라는 의미입니다. 넷째, 그의 설교의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의 설교를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요? 그는 성경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의 말씀을, 듣는 이의 마음의 문을 열고 집어 넣기 위해 설교를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성경말씀이 우리의 교과서입니다.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의 문이 열리기 위해 우리는 늘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것은 정말이지,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야만 되는 일이기에 그렇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해야 할 것이 상대방의 마음에 예수를 집어 넣는 일이지요. 이 바울의 말씀 사역의 패턴은 우리 교회 식구들끼리든지, 가족들끼리든지누구에게든지 적용이 가능합니다.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며(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 예수를 상대방에게 집어 넣은 것, 바로 제자를 삼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하루 하루의 삶을 이처럼 설교하듯이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3. 말씀을 거역하는 자들은 항상 급진적입니다. 이상하지요. 왜들 그럴까요? 엉뚱한 사람 집에 난입하여 자기들 마음대로 뒤지고, 심지어 엉뚱한 사람에게 말도 되지 않는 이유를 들어 법적인 구속을 하고 말입니다. 결국엔 그들의 노력이 헛수고로 돌아가지 않습니까? 이것이 교회와 세상의 차이입니다. 복음은 변질되지 않습니다. 초대교회에 뿌려진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복음은 지금까지 동일하고 신실합니다. 복음이 뿌려지고 복음이 자리하고 있는 그 곳에는 더욱 더 교회다워지든지 아니면 더욱 더 썩어지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왕 교회일 바에야 더욱 확실해 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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