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0일 금요일 (역대하 22-2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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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여호람의 뒤를 이은 유다 왕, 아하시야는 글자 그대로 마마 보이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악한 왕조 오므리 왕가의 사람인 어머니의 뜻대로 정치를 한 것입니다. 42세에 왕이 되었음에도 어머니의 치마 폭을 넘지를 못했습니다. 악한 왕이 되는 것도 참으로 여러 가지입니다. 

2. 아하시야 왕의 악한 어머니 아달랴가 예루살렘을 다스릴 때, 용기를 내어 어린 요아스를 왕으로 옹립한 사람은 제사장 여호야다 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벌리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사람을 붙혀 주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벌리는 사람에게는 절제된 용기와 힘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벌리는 사람에게는 자신이 하는 일의 분명한 목적을 주십니다. 더 나아가지도 않게 하시며 부족하지도 않게 하십니다. 제사장 여호야다가 그랬습니다. 참 멋쟁이 입니다. 

2. 요아스의 처음은 선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멘토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는 사람 중심의 정치를 함으로 악한 왕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말씀 사역자가 된 선지자 스가랴는 주저 않고 요아스 왕에게 책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말씀을 말씀답게 전하는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는 죽임을 당하고 말지요. 하나님을 대신 해서 사람들의 왕이 되고자 했던 악한 왕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종들을 너무 쉽게 죽이고 맙니다. 말씀이 그렇게도 싫을까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자신의 기득권, 권위의 자존심, 정치적 역학관계로 말미암는 의무… 이런 따위가 그렇게도 중요한가 봅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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