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이것 뿐이란 말인가?

사도행전 강해 (17장 16-34절)

1. 바울은 아덴(아테네)에 도착하여, 다른 도시에서 못 보던 것을 봅니다. 우상입니다. 그래서 화가 난 것이지요. 시편에 보면,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것 때문에 눈물을 흘린다 했습니다. 남이 나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할 때에 화가 납니다. 혹은 옳지 않은 일을 볼 때에 화가 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이 하나님을 멀리 할 때 과연 화가 나나요? 말씀에 몰입하고 말씀을 받아들일 때에 가능한 귀한 은혜입니다.

 

2. 16절이 말하는 란 격분한 마음의 상태를 말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곧 마음을 추스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부활을 선포하는 데에 전념하였습니다. 도대체 이 당시의 바울의 마음의 상태가 어땠을까요? 자신의 의의를 드러내지 않고 오직 예수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바울, 눈에 보이십니까?

 

3. 바울은 타도시에서의 설교의 방식을 바꿉니다. 첫째로, 최대한 아덴의 사람들을 정중하게 대합니다. 철학에 미쳐 있는 그들을 존중하듯, 말을 조심스레 시작합니다. 그들의 종교심(절대자에 대한 두려움)을 칭찬하며 설교를 시작합니다. 둘째로, 그들과 관계 없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청중들이 관심 없는 부분은 최대한 언급을 최소화하며 설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부활을 필히 이야기 합니다. 그것이 복음의 핵심이기 때문이지요. 방법은 바꿀 수 있으나, 핵심의 결론은 바뀌지 않습니다.

 

4. 아덴에서의 사역은 바울의 기대와는 달리 몇 사람(3-4)만이 복음을 영접하였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인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기대치로 교회의 부흥을 설정하면 그것 또한 교만입니다. 말씀대로 살고, 말씀을 선포하고 하는 그 자체가 주님이 원하시는 우리의 삶입니다. 가끔 교회에 열심이 있는 분들일수록 이런 한탄을 하곤 하지요. 정말 열심히 했는데… 겨우 이것 뿐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많은 결실을 눈으로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말씀을 말씀답게 지키고 선포하고 살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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