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신실하도다!

사도행전 강해 (19장 1-10절)

1.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가르침으로 진정한 복음을 깨달은 아볼로는 고린도 지역으로 또 다른 말씀 사역을 위해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의 탁월한 리더십으로 말미암은 이전의 제자들이 아직도 에베소에는 많았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에 와서 바로 그들을 만난 것입니다. 어떠한 세례를 받았는지에 대한 대화를 통해, 그들 또한 아볼로처럼 불완전한 복음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된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진정한 복음을 선포합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완전한 세례를 베풀게 됩니다. 비로서 성령충만의 역사가 그들에게 임하게 되지요. 불완전한 복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현재의 교회에도 상당수 있습니다. 불완전한 복음만을 믿고 있다는 것과 불완전한 믿음 생활은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불완전한 상태의 신앙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부족한 사람들이지만, 복음을 옳게 깨닫고 배워야 합니다. 주님의 원하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깨달음은 중요한 것입니다.

 

2. 성령을 받은 외형상의 모습을 표현한 사도행전의 말씀은 세 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사도들을 비롯한 첫 교회의 식구들에게 임하였고, 둘째는 고넬료를 비롯한 이방인들에게서 볼 수 있었고, 바로 셋째가 오늘 본문에 나타납니다. 동일한 표현이,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한다는 것입니다. 특정한 다른 나라의 말로 이야기하고, 장래의 일을 미리 말한다는 의미로 분명히 해석될 수 있는 표현들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의 동사, 방언하다예언하다말하다혹은 선포하다의 의미도 동일하게 있는 단어들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고 선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성령충만의 증거는 말씀을 책임지는 자들로서 그 말씀을 말하고 선포하는 것이 됩니다. 여하튼 고전14:3-4의 말씀처럼 방언은 스스로의 덕을 위해, 예언은 교회의 덕을 위해 쓰여져만 합니다.  그 목적으로 주님께서는 성령충만한 자들에게 선물을 주시는 것입니다.

 

3. 바울과 유대인들은 물과 기름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바울이 에베소 회당에서 무려 3개월 동안이나 말씀 사역을 한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입니다. 그리 환영 받지 못하는 곳에서 말씀을 외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기에 그렇습니다. 환영 받는 재미로 말씀을 전하고,  혹은 환영 받기 위해 말씀을 제대로 전하지 않는 사역자들이 많은 작금의 현실을 볼 때에 참으로 대단한 분입니다. 그것도 바울은 한결같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설교를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 사역의 주제와도 같은 것입니다. 예수에 미친 사람, 그분이 전한 것을 그대로 전하는, 정말 한결 같은 사람, 바울입니다.

 

4. 말씀을 말씀대로 전할 때, 하나님 앞에서의 탁월한 설교는 반드시 반대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꾸준히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퉁명스럽게 그저 거부하는 반응도 사실은 힘이 드는데, 돌아다니며 욕을 합니다. 설 곳이 없어지지요. 바울은 드디어 결정을 합니다. 그곳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고 따라오는 자들을 따로 모읍니다. 그리고는 한 장소를 정하여 꾸준히 모이기 시작합니다. “바울 선생님, 한 주에 두 번만 모이지요”, “아니, 두 번은 좀 그렇고 격일로 모입시다. 사실 그것도 참 힘이 들어요. 우리도 먹고 살아야지요등등의 현실적인 반응도 없지 않아 있었을텐데바울은 매일 모입니다. 결국은 이 꿋꿋한 리더의 사역으로 인해 말씀은 신실하게 선포되었고,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7교회가 주위에 서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만을 꾸준히 신실하게 전파한 사도 바울그의 이러한 에베소에서의 사역, 우리가 이어나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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